나의 포트폴리오 ...
글/그림 : 송 기 성 (C.G 작가)
(이 글은 94년 1월 월간 'Hello-PC' 에 게재되었던 것을 정리한 것 입니다.)
컴퓨터와의 만남
내가 컴퓨터라는 물건을 처음 접해 본것은 중학교 때의 일이다. 친구녀석이 '애플 II' 라고 하는 컴퓨터를 장만했다고 해서 호기심에 달려가서 만져보았는데 그때의 신기함이란.....!
아마 머리에 뿔난 돼지를 봤더라도 그때처럼 신기해 하진 않았을 거다. 막연히 '컴퓨터는 매우 비싼 계산기' 라는 선입견이 보기좋게 무너지는 순간이었다.
호기심이 온통 그쪽에 쏠려 있으니 다른일이 눈에 들어올 턱이 없었다. 1년 정도를 BASIC 에 매달려서 지금 생각하면 별 대수롭지도 않은 프로그램들을 만든답시고 수업시간까지 책상밑에 연습장을 깔아두고 궁상을 떨었던 기억이 난다. 아마 창조의 짜릿함을 피부로 느껴본게 이때였던것같다.
고등학교에 진학하면서 입시공부에 맞닥뜨린 나는 자연히 컴퓨터공부를 멀리 할 수 밖에 없었고 그때까지만해도 친구집을 들락거리며 컴퓨터를 만져야했던
나는 '대학만 가면 저놈의 애플을 꼭 장만해야지' 하는 생각을 버리질 못했다. 그림그리길 좋아했던 나는 미대로의 진학을 생각했지만 내가 좋아하는 그림과 입시미술과는 너무나도 거리가 멀었기 때문에 스스로 포기를 하고 말았다. 어쨌거나 우여곡절 끝에 대학교에 입학하게 된 나는 벼르고 벼르던 컴퓨터를 장만하게 되었는데 이미 그때는 애플 II 기종은 점점 사라지고 있었고 IBM XT 라는 기종이 점점 사용자들을 확보해나가고 있었을 때였다. 그런데도 워낙 애플의 매력에만 집착하고 있었던 나는 분위기 파악을 못한채 '그래도....' 하는 심정으로 애플을 장만했지만 그것은 실수였다. 주위사람들이 새로 배울 것들을 예습하고 있을때 나는 전에 배운것의 복습에만 매달려 있었던 거다.
나는 애플을 산지 1년만에 완전히 흥미를 잃었고 그후 애플은 나에게로부터 점점 사라지고 말았다.
세월은 흐르고
몇년 후인 1991년, 군복무를 마치고 복학하기 전에 컴퓨터공부를 해야겠다는 생각으로 마음을 고쳐먹고 286을 장만하였다. 역시 애플에서 286으로의 점프는 쉽지 않았다. 거의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야 했다.
친구에게 빌린 도스책을 보아가며 6년전에 애플을 처음 보면서 지었던 바보같은 표정을 또다시 지어야 했던 것이다.
몇개월 후 어느정도 시스템을 이해하고 난 후에 안 것인데 나의 하드디스크에는 생각보다 많은 프로그램들이 심어져 있었다. 사실 처음엔 마우스를 보고 "도대체 이게 컴퓨터에 왜 붙어 있는거지 ?" 라고 지껄였었는데 얼마 후 그 대단한 위력을 느끼게 된 것은 우연히 실행시킨 그래픽 프로그램 때문이었다. 그것은 마우스를 사면 제공되는 'IMAGE 72' 라는 프로그램이었는데 16컬러로 동그라미,네모 ,선그리기와 칠하기정도가 고작이었지만 나에겐 예전에 잊혀진 그림에 대한 미련을 되살리기엔 충분한 것이었고 내가 컴퓨터를 사용해 나아갈 방향을 제시해준 계기가 된 것도 이때였던것 같다.
어쨌거나 한동안 이 프로그램을 가지고 낙서 비슷한 그림들을 수도없이 그렸다 지우고 하면서 사용법에 익숙해지고 나니 그와 비슷한 형식을 가진 다른 그래픽 프로그램들도 별로 어렵지 않게 사용법을 습득할수 있게 되었다. 아쉽게도 'IMAGE 72' 로 그린 그림들은 거의 남아 있지 않다. 지금 생각하면 다 소중한 자료들인데 그땐 왜 그리 쉽게 지워 버렸는지 모르겠다.
본격적인 연습
그 후 여러가지들의 프로그램들을 차례로 사용해보게 되었는데 그중에서도 나에게 본격적으로 컴퓨터그래픽에 발을 들여놓게 된 계기가 된 프로그램이 바로 'Deluxe Paint' 였다. 내가 사용해본 비슷비슷한 그래픽 프로그램들중에서도 가장 특별한 기능과 함께 발전적인 아이디어를 유도하게끔 한 프로그램이었기 때문이다. 특히 2차원 그래픽 프로그램들을 접하면서 아쉬웠던 3차원적인 입체물의 표현을 디럭스페인트는 어느정도 만족시켜 주었다. 그래서 그런지 몰라도 디럭스 페인트로 그려진 그림들의 대부분이 입체적인 표현으로 나타나고 있다. 사실 이때엔 결과보다도 그려나가는 과정 그자체만으로도 재미가 있어서 적지 않은 그림들을 남겨 놓았다.
환경을 바꾸어보다
한데 어느정도 시간이 지나자 몇가지 의문이 생기기 시작했다. 과연 내가 그리고 있는 그림들이 제대로 그린것인지 아닌지, 아니면 뭐가 잘못된건지....한마디로 주위에 나의 작업에 대해서 충고를 해 줄 사람이 없었던 것이다. '이렇게 혼자 까불다가 그냥 제풀에 수그러드는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어서 많은 사람들이 들락거리는 컴퓨터그래픽 학원에 발을 들여놓았다. 분위기 파악을 위해서였다. 교육과정은 대부분 이미 혼자서 익힌내용이어서 특별히 얻은 지식은 많지 않았지만 중요한건 여러 학원생들이 같은 프로그램으로 그려대는 다양한 그림을 보면서 비교해 보고 새로운 느낌을 받을수 있다는 것이었다. 다행이도 대부분의 수업을 무리없이 소화하게 되자 약간의 자신감도 생기고 나를 가르치시던 강사분에게도 적지 않은 정보를 얻게 되면서 시야가 약간 넓어지게 되었다.
'내가 알고 있는 것들을 기사화시켜보는 건 어떨까?' 라는 엉뚱한 생각을 한게 바로 이때였다. 평소에 구독해보던 컴퓨터월간지에 투고를 계획한 것이다.
떡 줄 사람은 생각도 않는데 김칫국 부터 마신다고.....
나는 디럭스페인트를 주제로 (지금 생각하면 별것도 아닌 내용을 마치 대단한 것이나 되는것처럼) 원고를 써서 수정에 수정을 거쳐 자료그림과 함께 디스켓한장에 담아서 잡지사에 무작정 보냈는데 이것이 1991년 12월호에 기사화되어 실린것이다. 이 일이 '헬로우-PC'의 표지디자인까지 도맡게 된 인연의 시초라고나 할까.........
시간이 지날 수록 전보다 더 나은 기능을 가진 프로그램들이 등장하기 시작했고 사용법도 점점 복잡해지기 시작했다. 특히 2차원 애니메이션을 만드는 프로그램인 'Animator'는 너무 많은 기능과 복잡한 메뉴로 인해서 나를 골치아프게 만들었었는데 역시 대단히 뛰어난 프로그램임은 부인할 수 없었다.
3차원 그래픽에 눈을 떠 보니
91년이 끝나갈 무렵 눈이 번쩍할 만한 프로그램을 접하게 되었는데 이게 바로 '3D Studio' 였다. 3차원 모델링과 애니메이션을 위한 프로그램이었는데 기존의 2차원 그래픽프로그램의 메뉴에 익숙해져 있었던 나는 당황할 수 밖에 없었다. 그림을 완성해나가는 과정이 판이하게 달랐기 때문이다. 한마디로 페인팅과 조각의 차이라고나 할까. 가상의 공간에 입체를 설계하고 그 입체에 옷을 입히고 카메라와 조명을 설치하고 촬영하는 것, 이 모든것이 모니터안에서 일어나는 상황이었고 그러한 과정을 거쳐서 그림이 완성되는 것이었다.게다가 그때엔 그 프로그램이 처음 등장했을때라 누구하나 물어볼 사람이 없었다. 겨우 구한 것이 사전같이 두꺼운 영문 매뉴얼이었다. 별 도리가 없었다. 3차원 그래픽에 대한 호기심은 하늘을 찌를 듯 했고 짧은 영어실력으로 사전을 뒤적거리며 시행착오을 되풀이해가면서 혼자 사용법을 익힐 수 밖에....
하지만 이렇게 혼자 끙끙대며 알게된 지식들은 결코 쉽게 잊혀지지 않았고 나에게 스스로 연구하며 작업하는 습관을 갖게 만들었다.
'3D Studio'를 배워나간지 몇달 후 처음으로 완성된 작품이 하나 만들어 졌는데 그게 바로 '생각하는 사람' 이라는 작품이다. 이전의 직접적인 모방과는
달리 상징적인 의미로써의 자화상이라고 할 수도 있는데 어쨌든 나에겐 새로운 표현방법에 대한 발전의 의미가 큰 작품이다. 그 후 권총,우주선,자동차,로보트 등 계속해서 여러가지를 만들어가며 모델링연습을 거듭하였는데 이 입체를 만들어나가는 모델링이 보이지 않는 중노동이라는것을 그때서야 알게 되었다.또한 3차원그래픽 프로그램이 막강한 기능을 발휘하긴 하지만 원하는 그림을 얻기엔 소프트웨어 하나로는 부족하기도 했다. 이는 큰붓 하나로 모든걸 다 그릴수 없다는 뜻이기도 하다. 필요한 부분이나 효과에 따라 여러개의 프로그램을 거치며 완성도를 높이기 위해서는 많은 그래픽 프로그램들을 자유로이 넘나들수 있는 융통성이 필요하다는 생각에 접해볼수 있는 프로그램들은 놓치지지 않고 써보고 특별한 기능을 기억해 두었다가 써먹곤 하였다.
첫 수상
92년도에 복학을 하면서 학교생활과 C.G 공부를 병행해 나가기 시작하면서 내가 투자할 시간이 많이 줄어들었다. 그럴수록 의욕은 더 커지기만 했는데 그 의욕이 처음으로 빛을 본 것은 4월에 있었던 제 1 회 한국컴퓨터그래픽스대전
이었다. 공모전 마감 한달 전부터 준비한 '미래의 충격' 이란 작품을 조심스럽게 출품했는데 이것이 특선작으로 선정되어서 KOEX 에서 일반인들에게 전시가 되었던 것이다. 비록 큰상은 아니었지만 이때의 기쁨이란 대단한 것이어서 1년정도 C.G 에 쏟은 노력을 한번에 보상 받는 느낌이었다.
이때에 전시된 수상작들을 보다가 알게된 곳이 바로 컴퓨터그래픽 동호회인 '컬러랜드(ColorLand)' 이다. 그 전부터 통신을 하고 있었던 나는 반가운 마음에 바로 회원이 되어서 활동을 시작했는데 여기서 다른 회원분들의 좋은그림들을 접하면서 많은 느낌을 받았고 이곳에서 알게된 분들하고 친분을 쌓아가며 많은 도움을 받을수 있었다. 김치훈,서원일,남궁석,정원재씨 등 .. 역량있는 회원과의 만남은 전시회때 마다 서로 도와가며 충고하는 과정을 통해서 좋은 친구로 이어졌고 이것이 훗날 내가 C.G 작가 그룹 '고 도' 의 창립멤버가 된 배경이 되었다.
전화위복
잡지사에 계속 원고를 연재하면서 한학기를 보낸 나는 여름방학이 되자 모 학원으로부터 '방학기간동안 컴퓨터그래픽을 가르쳐보지 않겠느냐'는 제의를 받고 두달 동안 강사로 아르바이트를 하게 되었는데 역시 누구를 가르치는일은 생각보다 쉽지 않나보다. 처음 시작할때의 자신감은 생각지도 않은 학생들의 질문에 머뭇거리면서부터 깨지기 시작했고 결국 나의 부족함을 절실히 일깨워 준 좋은 경험으로 남게되었다.
이때의 무력감과 외로움을 담은 그림이 바로 '이방인' 이고 아직까지도 개인적으로 가장 아끼는 작품중 하나이다. 뜻밖에도 이 괴상한 그림은 마이컴에서 주최한 C.G 공모전에서 나에게 우수상을 안겨주었고 남에게 보여주기 위한 그림이 아닌 주관적인 작업의 중요성을 느끼게 해 주었다. 이렇게 일반적이지 못한 특이한 성향의 작품들은 후속작인 '반란' 과 함께 93년도의 '미래의충격 II' 와 '남성예찬' 등으로 계속 이어지게 된다.
또 다른 작업
93년이 되자 생각지도 못한 일들이 하나둘씩 생겨나기 시작하는데 그중 하나가 바로 월간 'Hello-PC' 의 표지를 그리게 된 사연이다. 2월호부터 표지의 포맷을 대폭 바꾸기로 했는데 새 표지를 그려 줄 사람이 필요했었나보다. 나는 '새 표지를 맡아서 그려보지 않겠냐'는 제의를 받고 당황할 수 밖에 없었다. 해보고 싶다는 욕심이 앞서기 전에 독자들의 입맛에 맞는 그림을 그려낼 자신감이 없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결론은 '안해보고 후회하는 것보다 해보고 후회하는게 낫겠다'라는 쪽으로 흘러갔고 주어진 조건에 사고를 맞추어나가는 새로운 작업방식에 익숙해져야 했다.
역시 처음부터 표지인물을 제자리에 넣고 특집기사의 주제를 나타내며 계절감각까지 살리기는 역부족이었는지 처음 몇달간은 어느것 하나 제대로 살리지 못하고 완성된 어색한 표지를 앞에 두고 궁색한 변명을 늘어놓아야만 했었지만 5월호 표지부터는 주어진 조건을 어느정도 살려내면서 작업의 흐름을 잡아나갔다. 학교생활을 하면서 매달 표지 작업과 더불어 개인작품도 소홀히 하지 않으려하다보니 정신없이 시간이 지나갔고 표지작업에 투자해야 할 시간은 점점 촉박해졌다. 시험기간까지 겹쳐서 시간에 쫓긴 나머지 어느것 하나 제대로 살리지 못한 표지들은 언제 보아도 불만스럽기만 하다.
Summer Project
여름이 되자 나는 새로운 작업에 착수하게 되었는데 그것은 내 작품집을 새로 꾸미는 것이었다. 그동안 모아둔 개인자료가 있긴 하지만 계획 없이 쌓아두다 보니 빠진것도 많았고 무엇보다도 내 그림을 체계적으로 소개할 만한 포트폴리오의 필요성을 느꼈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동안 작업해온 70여작품들을 전부 고화질의 컬러프린터로 출력하여 일목요연하게 정리하기 위해서 아르바이트로 번 돈을 전부 쏟아부었고 이때 투자한 비용이 거의 백여만원에 이르렀다. 한달정도의 작업기간을 거쳐서 연도별로 잘 정리된 3권의 포트폴리오는 대외활동을 위한 만남에서 나에 대한 구차한 설명이 필요없을 정도로 큰 역할을 해주었기 때문에 나는 여기에 투자한 시간과 비용을 전혀 아깝게 생각하지 않는다.
활동 영역 넓혀보기
수차례의 C.G 전시회에 참가 하면서 나름대로 활동영역을 좀 더 넓혀보고자 순수미술공모전인 신미술대전에 판화부문으로 C.G 작품을 출품하여 입선한 것이 계기가 되어 93년 10월 ,우주벡공화국에서 주최하는 한국작가초대전에 참가할수 있게 되었고 이때 출품한 작품이 'TV 를 보다가 잠든것이 원인이 된 꿈' 이다. 거의 1년정도의 작업기간을 거쳐 완성된 이 그림은 현대인의 꿈에 대한 함축적 의미의 상징물로써 구성된 그림으로써 나에겐 처음으로 해외전시회에 공개하게 된 의미있는 작품이기도 하다.
표지제작을 계속 해 나가면서 점점 작업의 요령도 생기고 완성도도 높아졌지만 그만큼 욕심도 커져서 매달 고심하긴 마찬가지였다. 역시 시험기간에 맞닥뜨려 시간에 쫓긴 10월엔 그 스트레스가 극에 달했는데 우습게도 그 스트레스를 풀기 위해 내가 한 것은 바쁜 와중에서 개인작품을 그린것이다.
이때 그려진 것이 바로 '도망자' 이다. 그때의 심정을 직설적으로 드러낸 것이어서 기존의 내 그림과는 그 느낌이 사뭇 다른것이었는지 몰라도 여기서 힌트를 얻은 나는 11월호 표지 를 전과 다르게 유화풍의 페인팅으로
전부 처리했고 이는 독자로 하여금 '표지디자이너가 바뀌었나?' 하는 의문을 갖게 하기에 충분했다. 나에겐 좀 모험적인 시도이긴 했지만 나름대로 새로운 방향을 제시했다는 점에서 스스로 만족하고 싶다.
요즘은 앞으로 있을 각종 전시회에 참가할 작품제작에 시간을 투자하고 있는데 4월에 있을 '고도' 창립전시회에 남다른 의미를 두고 작업을 하고 있다.
글을 마치며
나보다 훨씬 일찍 컴퓨터그래픽을 공부하고 더 나은 작품들을 그려내는 많은 선배들이 보기엔 내 글과 그림은 보잘것 없는 것일지도 모르지만 막연히 컴퓨터그래픽에 관심을 가지고 공부를 해보고 싶어하는 독자들에겐 몇년간 내가 겪었던 시행착오와 에피소드들이 보다 현실적인 선택을 하는데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리라 생각하면서 글을 마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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